1960년대 들어 나타난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마약 남용의 만연화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마약성 진통제를 남용하였고 이들이 전역한 이후에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며 마약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또한 68혁명이라는 큰 반문화 운동 속에서 마약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이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1년 미국 사회의 1호 적을 마약으로 지정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마약에 대해 신중한 접근법을 취한 지미 카터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몇년 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날아가지만 포드 정부와 카터 정부도 마약과의 전쟁을 계승했다. 리처드 닉슨은 마약 사용자의 처벌과 재활을 모두 중시해야한다고 생각해 예산을 거의 똑같이 분배했다. 그럼에도 마약 남용 비율이 떨어지지 않자 지미 카터 대통령은 기존의 엄벌주의는 해답이 될 수 없으며 피해자 재활에 많은 기금을 투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터 정권 시기 마약 재활 예산은 약 1,500만 달러까지 상승했으며, 카터는 이 외에도 1온스 이하 마리화나 소지를 합법화하며 양형 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자비로운 마약 지급(Compassionate IND) 기관을 만들어 마약 중독자들이 정부의 관리 하에 마약 복용량을 줄여나가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하지만 카터 정권은 경제난과 이란 대사관 인질극 사태에서 무능하게 대처하며 지지를 잃는다. 이런 배경 하에서 카터가 너무 유약해 국가적 혼란을 수습할 수 없다고 주장한 공화당의 극보수파 로널드 레이건이 부상한다. 1980년 대선은 이들이 맞붙은 선거였고 선거 결과 50%를 득표한 레이건이 41%를 얻은 카터와 7%를 얻은 제3지대 후보 존 앤더슨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듭시다!" (Let's Make Amercia Great Again - 1980년 대선 로널드 레이건 슬로건)



로널드 레이건은 마약 중독 문제에 대해 매우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히 의지만 가지고 노력을 하면 마약 중독에서 쉽게 이겨낼 수 있으니까 마약 중독자들을 돕기보다는 평범한 시민들이 마약에 손을 대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 따라 레이건은 "그냥 마약을 하지 마세요!"(Just Say No)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마약 중독을 방지하는 최고의 방법은 마약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했다. 그런 레이건의 입장에서 카터가 증액한 재활 치료 비용은 돈 낭비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래서 레이건은 재활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이를 마약 중독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예산으로 돌렸다.



"Just Say No" 캠페인을 홍보하고 있는 낸시 레이건 영부인



예를 들어 마약 단속국(DEA)가 감독하는 국내 대마초 근절 억제 프로그램(DCE/SP)은 마약 문제가 가장 심각한 7개 주에서만 시행되었으나, 레이건은 이를 40개 주로 확대했다. 또 기존 카터 정부에서는 중남미에서 넘어오는 마약을 단속하기 위해 400만 달러 정도의 예산만을 책정했지만 레이건은 이를 10억 달러로 증액했다. B-2 정찰기와 헬리콥터, 해군 함정까지 동원해 남미 마약 카르텔을 파괴하고 필요하다면 남미 국가들의 주권을 무시하고 상대 국가에서 군사 작전까지 시행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또 레이건은 임기 말 국가마약통제국(ONDCP)를 설립했으며, 마약 남용 퇴치법(Anti-Drug Abuse Act of 1986)에 서명하였다. 이 법은 마약 소지자에 대한 최소형량을 정함과 동시에 소지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배로 높인 것이었다. 이처럼 레이건은 마약 중독자에 대한 사후 대처보다 공급과 수요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이전 정부보다 몇배에 달하는 예산을 마약 소지자와 공급자를 처벌하고 단속하는데 사용하였다.



이 정책은 효과가 있었을까? 단순 수치적으로 비교하자면, 카터 정권 후반기였던 1979년 마약 과복용으로 사망한 미국인의 수는 전미에서 2,544명이었다. 그런데 현재 이 수치는 9만 1,799명으로, 36배나 올랐다. 레이건의 의도와 정 반대로 미국은 세계 최악의 마약 중독 국가가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가령 앞서 설명한 1986년 마약 남용 퇴치법을 찬찬히 뜯어보자. 이 법이 제정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랙과 코카인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코카인은 일반적인 종류의 마약이지만 크랙은 코카인에 불순물을 섞어 만든 싸구려 마약이다. 자연스럽게 코카인은 소수의 고위층이 사용하는 마약이 되었고 크랙은 대다수의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마약이 되었다. 일단 수치상으로 보면 코카인 보다 크랙의 사용 빈도가 훨씬 높았기 때문에 레이건은 크랙을 아주 쎄게 때려잡아야 마약 문제가 해결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5그램의 크랙을 소지하는 것과 500그램의 코카인을 소지하는 것을 똑같은 형벌로 처벌하게 하였고, 형량은 무려 최소 징역 5년형이었다. 또한 "삼진아웃" 제도가 도입되어 3번 마약 소지 혐의로 처벌되면 자비 없이 최고형량이 부여되게 했다.



이는 많은 점에서 문제가 된다. 첫번째로 크랙의 원료인 코카인은 처벌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크랙의 공급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두번째로 코카인의 주 사용층이 고위층이었고 이들은 당연히 처벌을 대부분 피해갔는데 이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일어났다. 세번째로 크랙을 5그램만 가지고 있어도 기본적으로 교도소에 5년이나 들어가게 되다보니 마약을 적게 하든 많이 하든 사실상 별 차이가 없어졌다. 마약 중독자에도 정도가 있는데 이 정도 차이를 무시하고 무식하게 모조리 교도소에 가둔 것이다. 마약 딜러들은 어차피 5그램을 유통하든 5킬로를 유통하든 처벌 수위가 거의 다르지 않게 되었으므로 더욱 과감하게 날뛰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이 유명한 장면이 나온 배경에는 코카인 처벌 기준을 오히려 완화한 레이건의 정책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마약을 처음 접하거나 운반하는 역할을 맡는 등 중독과 별 상관이 없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었다. ACLU(미국 시민자유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이 법으로 인해 구속된 사람 중 72% 가량이 심각한 마약 중독이라고 볼 수 없는 상태의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는데 난데 없이 흉악범과 같은 교도소에 갖히다보니 온갖 안좋은 분위기에 물들어 형기를 채우고 출소하게 되었다. 멀쩡한 사람이 교도소에 들어가 흉악범죄자가 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범죄율은 급등했고 마약 남용 비율도 폭등했다. 심각한 마약중독자가 잡혀들어와도 문제였던 것이 교도소에서는 그 어떠한 재활의 기회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에 시달리던 이들은 출소해서도 살기 위해 마약을 구해야했고 이로 인해 마약 중독자의 비율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감소하지 않았다.


답도 없는 수준으로 치솟은 미국의 교도소 수감자 수



더 안좋은 것은 이러한 처벌이 특정한 계층, 특정한 지역에만 몰렸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크랙은 값싼 마약이기 때문에 주로 저소득층이 많이 사용했는데, 그래서 교도소에 갇힌 사람 중에서도 저소득층 유색인종의 비율이 높았다. ACLU에 따르면 마약남용퇴치법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흑인의 비율이 74%였다고 한다. 한 도시에서 자라고 큰 사람들이 한순간에 같이 교도소에 가게 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도시의 흑인 밀집 지역에서는 한집 건너면 마약 때문에 교도소에 간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매우 일반적인 것이 되었고, 도시 분위기는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마약 중독을 퇴치하기 위해 만든 법이 정작 마약 중독의 계층적인 특성을 파악하지 못해 아예 한 인종, 한 지역, 한 세대를 마약 슬럼화시킨 것이다. 이런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마약에 노출되지 않겠는가. 그런 식으로 계속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레이건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레이건은 낙수 효과를 운운하며 취임하자마자 최고세율을 70%에서 50%로 줄인다. 그리고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항해야한다고 최첨단 미사일과 폭격기를 구입하고 우주전쟁을 명목으로 우주군을 창설하는 등의 행보로 GDP 대비 군비지출을 6%까지 끌어올렸다. 당연히 정부 부채는 눈덩이처럼 쌓여갔고, 카터 정권에 비해 레이건 정권 시기 정부 부채가 3배나 늘어났는데, 고소득층 및 기업 세금 삭감과 군비 무제한 증강으로 적자가 두배가 되었다 하여 이를 "쌍둥이 부채"라 한다. 레이건은 국가에 돈이 없다고 징징거리며 주 정부와 복지에 할당하는 예산을 대폭삭감한다. 레이건은 1984년 다목적 재정 지원 예산 740억달러를 전액삭감했고 이를 포함해 1986년까지 총 1,700억 달러 가량의 지원금을 삭감한다. 이 삭감에 포함된 것은 경찰 지원금, 신규 교도소 건설 비용, 지역 교육 시설 확충 예산 등이었다.



마약 처벌 형량을 높인 상태에서 교도소 예산을 삭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선 교도소 내 갱단 관리가 안되었고 마약에 찌든 갱이 교도소로 흘러들어와 대놓고 교도소 안에서 마약 거래를 하는데도 예산 부족으로 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또 5그램만 크랙을 소지해도 그냥 무작정 교도소에 사람을 쑤셔넣다보니 교도소에 공간이 없어졌다. 이렇게 하여 미국은 북한보다도 더 많은 인구 대비 교도소 수감 인구를 기록하는 국가가 된다. 교도소 안에 공간이 없어지니까 미국 정부는 다른 범죄자들이 교도소에서 가만히 있으면 가석방을 시킬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아동성폭행, 아동음란물 소지 등으로 징역 1,000년형을 선고받은 흉악범죄자가 빵에서 얌전히 있었다고 단 5년, 6년만에 출소하는 막장 사태가 일어난다. 교도소 안팎으로 범죄율이 폭발하는데도 경찰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레이건이 미사일 사고 부자 친구들 세금 깎아줘야한다고 경찰 지원금을 짤라버렸기 때문이다.